손주에게 물려줄 돈, 은행을 끼면 커진다 — 5년만 넣는 상속 설계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살아 있을 때 현금으로 주거나, 떠난 뒤 상속으로 넘기거나.
현금은 건네는 순간 어디에 쓸지를 받는 사람이 정한다. 목돈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진다. 상속은 거꾸로 너무 늦다. 손에 쥘 때쯤이면 자녀는 이미 쉰이나 예순이다. 목돈이 정작 아쉬운 시기는 따로 있다. 첫 집을 장만할 무렵, 아이를 키우기 시작할 무렵이다. 예순에 받는 돈으로는 새 기회를 잡기 어렵다. 이미 지나간 선택을 뒷정리하는 데 쓰이기 쉽다.
방법이 하나 더 있다. 현금을 그대로 주는 대신, 손주나 성인이 된 자녀 이름으로 cash value 생명보험 계좌를 만들어 주는 방식이다. 조부모나 부모가 5년 동안 돈을 넣어 그 계좌를 채운다.
생명보험에 돈을 넣는 것만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다. 여기에 은행을 끌어들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부담하는 몫은 5년으로 끝나는데, 계좌에 실제로 들어가는 돈은 그보다 훨씬 크다. 나머지를 은행이 premium financing으로 채우기 때문이다. 설계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넣은 돈의 두세 배가 얹힌다. 현금으로 줬다면 건넨 만큼만 넘어갔을 돈이다. 여기서는 5년만 넣고도 그 몇 배짜리 계좌가 손주 이름으로 만들어진다. 넣는 돈이 클수록 은행이 얹는 돈도 함께 커진다. 손주 앞으로 남는 계좌의 크기는 결국 5년 동안 얼마를 넣었느냐로 갈린다.
세금이 매겨지는 방식도 다르다. 계좌 안에서 돈이 불어나는 동안에는 해마다 내는 세금이 없다. 같은 돈을 증권계좌에 넣어두면 이자와 배당, 매매 차익에 해마다 세금이 따라붙는다. 보험 계좌 안에서는 그 부담이 뒤로 미뤄진다. 세금으로 빠져나갈 돈까지 함께 불어나는 셈이다. 해가 갈수록 그 차이는 벌어진다. 15년, 20년이 쌓이면 무시할 수 없는 크기가 된다. 나중에 필요할 때는 policy loan, 즉 계좌를 담보로 빌려 쓰면 세금이 붙지 않는다.
구체적인 방식은 상품마다 다르지만, 흔히 쓰는 설계는 이렇다. 5년 동안 돈을 넣고 그 뒤로는 넣지 않는다. 은행에서 빌린 돈은 15년째쯤 계좌에 쌓인 돈으로 갚는데, 빚을 정리하고 나면 그때부터 자유롭게 꺼내 쓸 수 있다. 첫 집 자금이나 아이 학비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 방식은 조부모와 손주 사이에서 특히 잘 맞는다. 돈을 꺼내 쓰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는 동안 돈이 불어나기 때문이다. 손주가 스무 살일 때 시작하면 서른다섯 무렵부터 쓸 수 있다. 집을 장만하고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다. 그때 조부모는 여든을 넘겼거나 이미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계좌는 손주 이름으로 남아, 필요한 때에 돈이 되어준다.
이미 서른다섯이 된 자녀 앞으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쉰 무렵부터 쓸 수 있으니, 자녀가 은퇴를 준비할 나이에 맞춰 목돈이 하나 준비되는 셈이다. 일찍 시작할수록 불어날 기간이 길어질 뿐이다.
다만 아무나 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다. 불입하는 부모의 연 소득 20만달러나 순자산 100만달러 가운데 하나는 갖춰야 한다. 5년 납입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중간에 끊으면 그때까지 쌓인 돈에서 일부를 돌려받지만, 넣은 만큼 다 돌아오지는 않는다.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기 전에는 꺼내 쓸 수 없고, 그동안 이자도 나간다.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것도 계좌를 끝까지 유지할 때의 이야기다. 결국 자기 노후 자금을 다 채우고도 여유가 남는 집에서나 검토할 만한 방법이다.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니, 결정하기 전에 전문가와 상의하는 편이 낫다.
집을 살 때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대부분 은행 돈을 빌려 집을 산다. 내 돈만으로 살 수 있는 집보다 큰 집에 들어가고, 그 집이 오르면 오른 값은 내 몫이 된다. 여기서 하는 일도 다르지 않다. 은행 돈을 함께 써서 손주 또는 자녀 앞으로 더 큰 돈을 만들어 두고, 그 돈이 정작 필요한 시기에 꺼내 쓸 수 있게 해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