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 정말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은퇴를 앞둔 많은 이들은 “이정도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은 경우가 많이 있다. 주택 대출은 대부분 상환했고, Social Security 수령 시점도 계산해 두었으며, 투자 포트폴리오 역시 나름 안정적으로 구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Kiplinger와 미국 최대 연금 판매 보험회사인 Athene이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는 이러한 자신감이 현실과는 기기 이상의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당 설문은 55세 이상 은퇴자와 예비 은퇴자 73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자 대부분은 순자산 10만 달러 이상을 보유한 중산층 이상으로, 통상적으로 ‘은퇴 준비가 된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노후 설계 전반에 걸쳐 구조적인 공백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낸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은퇴 이후의 Risk Management이다. 응답자의 32%는 Long-term care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24%는 유언장이나 trust 등 기본적인 estate planning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또 38%는 은퇴 후 세금을 어떻게 최소화할지에 대한 전략이 없다고 밝혔다.특히 주목할 점은, 13%가 장기요양 비용을 Medicare가 부담해 줄 것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제도에 대한 오해 하나가 노후 재정 전체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축과 투자에만 집중한 노후 준비의 한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응답자 다수는 “은퇴 후 자금 고갈을 피하기 위해 현금 비중을 늘리겠다”고 답했지만, 실제 은퇴자들의 경험은 달랐다. 은퇴 이후 물가 상승이 예상보다 높았다고 답한 비율은 53%에 달했고, 의료비가 생각보다 더 많이 들었다는 응답도 29%에 이르렀다. 단순히 얼마를 모았느냐 보다, 그 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인출하고 유지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은퇴 전과 은퇴 후의 현실이 가장 크게 엇갈린 부분은 Social Security 수령 시점이다. 예비 은퇴자 상당수는 full retirement age 이후 혹은 70세까지 수령을 미루겠다고 계획했지만, 실제 은퇴자들의 선택은 달랐다. 62세에서 66세 사이에 조기 수령을 시작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실직, 건강 악화 등 예상하지 못한 변수 때문이다. 은퇴 설계에서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연성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설문에 참여한 은퇴자들에게 “다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라고 묻자, 가장 많은 응답은 ‘더 많이 저축했을 것’(50%)과 ‘더 일찍 계획을 시작했을 것’(41%)이었다. 그러나 눈여겨볼 응답도 있다. 5명 중 1명은 “평생 소득을 보장해주는 income guarantee 상품을 미리 활용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은퇴 이후 안정감이 단순한 투자 수익률보다, 지속적인 cash flow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또 하나 간과되기 쉬운 부분은 소통의 부재다. 응답자의 26%는 caregiving, long-term care, estate planning과 관련된 내용을 가족이나 주변인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노후 설계는 개인의 숫자 계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판단 능력 저하 시 누가 결정을 내릴 것인지, 자산 이전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면, 잘 준비된 자산조차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번 설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노후 준비는 ‘얼마를 모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위험을 관리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longevity risk, inflation, health care cost, tax, 그리고 lifetime income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항목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설계돼야 한다. 실제로 설문 응답자 중 financial professional과 함께 은퇴 계획을 수립했다고 답한 비율은 절반 수준에 그쳤지만, 추가적인 재정 자문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은 더 많았다.
은퇴는 더 이상 인생의 종착점이 아니라, 또 다른 20~30년의 출발선이다. 준비가 부족했다는 사실을 은퇴 이후에 깨닫는 것보다, 지금 점검하는 편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 “나는 정말 은퇴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점검이 필요하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일지 모른다.